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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이수현 &gt; 이수현님소개 &gt; 기사스크랩</title>
<link>http://www.soohyunlee.kr/bbs/board.php?bo_table=introduce4</link>
<description>테스트 버전 0.2 (2004-04-26)</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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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일본인 울린 義人이수현 25주기 추도식 신오쿠보역서 열려</title>
<link>http://www.soohyunlee.kr/bbs/board.php?bo_table=introduce4&amp;wr_id=236</link>
<description><![CDATA[한국인 유학생 이수현(李秀賢·당시 26세·고려대 재학 중 일본 유학)씨가 숨진 &#039;신오쿠보역 선로 추락 사고 25주기 추도 문화제&#039;가 26일 도쿄 신주쿠구 신오쿠보 일대에서 열렸다. <br/>사고 현장인 신오쿠보역에서의 헌화와 묵념에 이어 추도식과 문화공연이 진행됐다. 국경을 넘어 이어진 희생을 기리는 자리가 마련됐다.<br/><br/>이날 오후 3시 30분 주일본 대한민국대사관 이혁(李赫) 특명전권대사는 고 이수현씨의 어머니 신윤찬씨, 주최·주관 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JR 신오쿠보역에서 헌화와 묵념을 했다. 역내 안전 관리상의 이유로 헌화는 최소 인원만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진행됐다.<br/><br/>헌화 이후 오후 4시 30분부터는 신주쿠구 오쿠보 지역센터 4층 다목적홀에서 제25주기 추도 문화제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일반사단법인 신주쿠한국상인연합회가 주최하고, 특정비영리활동법인 LSH아시아장학회, 학교법인 아라이학원 적문회 일본어학교, 재일한국유학생연합회가 주관했으며, 주일본 대한민국대사관과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도쿄본부, JR동일본 신오쿠보역 등이 협력했다.<br/><br/>고 이수현 씨의 어머니 신윤찬 씨는 메시지를 통해 "아들의 뜻이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느낀다"며 "한일 양국이 진정한 이웃으로 서로 돕는 관계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br/><br/>이혁 대사는 추도사에서 "두 분의 희생은 국경을 넘어 한일 양국 국민에게 우정과 연대의 의미를 일깨웠다"며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은 올해 이수현 씨가 꿈꿨던 미래를 향해 양국이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br/><br/>정재욱 신주쿠한국상인연합회 회장은 개회사에서 "2001년 1월 26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라며 "이수현 씨가 생전에 품었던 &#039;한일의 가교&#039;라는 뜻은 장학사업과 민간 교류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br/><br/>재일한국유학생연합회 문병희 회장은 추도문을 통해 "이수현 의인의 행동은 유학생이 공동체의 안전과 존엄을 위해 행동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그 정신을 일본 사회 속에서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br/><br/>신주쿠구를 대표해 추도사를 대독한 오야나기 유지 지역진흥부장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두 분의 용기는 신주쿠가 지향하는 다문화 공생의 가치 속에 살아 있다"고 밝혔다.<br/><br/>이수현군의 의로운 희생을 기리는 의미로 생긴 LSH아시아장학회 가토리 요시노리 회장은 "2002년 설립 이후 1294명의 장학생을 지원해왔다"며 "앞으로도 일본과 한국, 아시아를 잇는 가교 역할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br/><br/>추도식 이후에는 한국무용과 쓰가루 샤미센 공연이 이어졌으며, 자유 헌화와 전체 기념촬영, 유가족과의 차담회가 진행됐다. 이수현씨와 일본인 세키네 씨는 2001년 1월 26일 신오쿠보역에서 선로로 추락한 일본인 남성을 구조하고 열차에 치여 숨졌다. 두 사람의 행동은 당시 한일 사회에 큰 울림을 남겼으며, 이후 장학사업과 민간 교류로 이어지고 있다.]]></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Wed, 04 Feb 2026 22:28:1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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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신오쿠보 의인’ 故이수현 25주기…모친 “떨어진 밀알도 썩지 않으면 열매 거둬”</title>
<link>http://www.soohyunlee.kr/bbs/board.php?bo_table=introduce4&amp;wr_id=235</link>
<description><![CDATA[2001년 일본 도쿄의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가 목숨을 잃은 의인 이수현 씨(1974∼2001)의 25주기를 맞은 26일 오후. <br/><br/>사고가 일어난 신오쿠보역의 신주쿠방면 2호차 3번 승강장 앞을 찾은 이 씨의 모친인 신윤찬 씨(76)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br/>그는 “25년이 흘렀네요. 제 머릿속에 있는 아들은 이 거리에 있는 친구들처럼 아직 청년의 모습인데, 이제는 아저씨가 돼 버렸다”면서 “제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안전) 시설이 너무 허술했다는 그 생각이 다시 나서 갑자기 울컥해졌다”고 했다.<br/><br/>어학연수로 일본을 찾은 이 씨는 2001년 1월 26일 저녁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해 역을 찾았다가 선로에 떨어진 한 일본인 취객 남성을 발견하고 뛰어들었다. <br/>이 씨와 함께 일본인 사진작가 세키네 시로(関根史郎‧당시 47세)가 구조에 나섰지만 열차를 피하지 못하고 3명이 모두 숨졌다. <br/>한국인이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진 점에서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줬고, 해마다 추도식이 열리고 있다. <br/>사고를 계기로 일본 지하철에 스크린도어 등 안전 시설도 보강됐다. <br/>이 씨의 이름을 따 2002년 설립된 ‘LSH 아시아 장학회’는 지금까지 1200여 명의 아시아 출신 장학생을 배출했다.<br/><br/>이날 추도식 이후 인근 오쿠보지역센터에서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br/>&nbsp;신주쿠한국상인연합회가 주최한 행사에는 이 씨처럼 일본에 온 한국인 유학생 등 약 150명이 참여했다. <br/>신 씨는 “한 알의 밀알이 떨어진 뒤 썩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다는 말이 있다”면서 “아들은 갔지만 양국의 우호가 더 좋아진다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Wed, 04 Feb 2026 22:25:4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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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도쿄에서 의인 이수현 25주기 추도식 열려</title>
<link>http://www.soohyunlee.kr/bbs/board.php?bo_table=introduce4&amp;wr_id=234</link>
<description><![CDATA[2001년 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의인 고 이수현 씨를 기리는 25주기 추도식이 26일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열렸습니다.<br/>오늘 추도식에는 고인의 모친인 신윤찬 씨와 이혁 주일 한국대사, 고인의 이름을 딴 LSH아시아장학회와 신주쿠한국상인연합회 관계자 등이 참석했습니다.<br/>추도식에 이어 신오쿠보역 인근에서는 신주쿠한국상인연합회 주최로 추도 문화제도 열렸습니다.<br/>모친 신윤찬 씨는 "밀알이 떨어져 썩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다"며, "아들은 갔지만 저도 양국 우호에 관련된 행사에 참여하면서 점점 (관계가)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습니다.<br/>이혁 대사는 "고인의 희생을 본받아서 양국이 더욱 협력해나가면 좋겠다"며 "일본 측이 좁은 전철역에서 추도식이 매년 열릴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는 것도 평가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Wed, 04 Feb 2026 22:21:4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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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의인 이수현’ 기념 주간 마무리 추모식 열려</title>
<link>http://www.soohyunlee.kr/bbs/board.php?bo_table=introduce4&amp;wr_id=233</link>
<description><![CDATA[일본 유학 중 지하철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진 의인 이수현을 기리는 추모식이 29일 부산 금정구 내성고등학교에서 열렸다.<br/><br/>2001년 일본 유학 중 전철 선로에 떨어진 남성을 구하려다 숨진 고 이수현 씨의 24주기를 맞아 그의 모교에서 추모 행사가 열렸다.<br/>부산 내성고등학교는 29일 오후 학교 교문 앞 이수현 의행 기념비에서 추모식을 열었다고 밝혔다.<br/><br/>추모식은 ‘의인 이수현 동문 기념 주간’의 마지막 공식 행사로 마련됐다. <br/>내성고는 지난 22일부터 29일까지 ‘내성인, 우리가 이수현입니다’를 주제로 추모 주간 행사를 진행했다. 학교 구성원과 전교생이 동시에 그를 추모하는 행사를 갖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br/><br/>이날 추모식에 앞서 가족과 동문의 헌사와 함께 이 씨의 삶을 되새기는 추모 영상이 전교생을 대상으로 상영됐고, 후배 학생들의 추모시·추모글 낭독도 이어졌다.<br/>추모식에서는 이 씨의 어머니 신윤찬 씨를 비롯해 김석준 부산시교육감, 내성고 교장, 동창회 관계자, 학생 대표 등 12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기념비 앞에 차례로 헌화와 묵념을 하며 이 씨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br/><br/>이수현 씨는 2001년 일본 도쿄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열차에 치여 숨진 한국인 유학생으로, 한일 양국에서 용기와 인간애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br/>지난 9월에는 한일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방한한 이시바 시게루 전 일본 총리가 부산 금정구 영락공원을 찾아 그의 묘지를 참배하기도 했다.<br/><br/>내성고 이성환 교장은 “의인 이수현 동문은 내성고의 자랑이자 전 세계에 희망을 보여준 인류애의 상징”이라며 “이번 추모식이 학생들이 그의 정신을 계승하고 나눔과 희생, 공감의 가치를 배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Fri, 02 Jan 2026 16:02:3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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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유학생 이수현의 용기와 가수 아스카의 눈물</title>
<link>http://www.soohyunlee.kr/bbs/board.php?bo_table=introduce4&amp;wr_id=232</link>
<description><![CDATA[이번 설 연휴 130만명을 넘겼다는 해외 출국자 무리에 섞여 일본 도쿄에 다녀왔다. 일요일이던 지난 26일, 일본인 친구 집에서 NHK 뉴스를 보는데 신오쿠보역 사고 24주기 소식이 나왔다. “2001년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씨와 일본인 남성 세키네 시로씨가 승강장에서 철로로 떨어진 남성을 구해주려다 벌어진 사망 사고로부터 24년. 이씨 어머니 등 관계자들이 현장을 찾아 묵념했습니다.”<br/><br/>일본이 매년 1월 26일 고(故) 이수현씨를 어김없이 추모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한국인을 바라보는 일본인의 시선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처럼 확 달라지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라고 친구는 설명했다. “일본인들은 남의 무거운 가방 대신 들어주는 일조차 쉽게 엄두를 못 내는 개인주의에 익숙한데, 이수현씨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생면부지 타인의 죽음을 막아보려는 놀라운 일을 한 거야. 그전까지 대다수 일본인에게 한국은 가난하고 별로 안 엮이고 싶은 친척 같은 존재였는데, 그런 선입견이 이 일을 계기로 차츰 지워졌다고 생각해.”<br/><br/>진심이 선입견의 지우개로 기능한다는 한일 관계 경험칙은 양방향으로 성립한다. 악(惡)이라 여겼던 일본이 순전한 호기심의 대상으로 바뀌는 순간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엔 25년 전 맞닥뜨린 일본인의 눈물이 그랬다. TV 채널을 뒤적거리던 2000년 8월의 어느 날, 톱스타 아우라가 흘러넘치는 일본 남자가 더듬더듬 한국어로 말하는 걸 봤다. “저희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노래해왔지만 한국에선 노래를 부를 수 없었습니다. 과거사를 함께 슬퍼하면서, 저희는 저희의 새로운 시대를 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이어서 노래 ‘온 유어 마크(On your mark)’가 연주됐는데, 그는 울먹거리느라 1절을 거의 못 불렀다. 그 순간, 일장기 너머의 사람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br/><br/>이날 울었던 남자가 일본의 2인조 밴드 ‘차게 앤드 아스카(CHAGE & ASKA)’ 멤버 아스카였고, 차게 앤드 아스카는 ‘세이 예스’ 등의 히트곡으로 1980~90년대 일본에서 절정의 인기를 누렸으며, 이 공연이 김대중 정부의 일본 문화 개방 정책에 따른 일본 가수의 첫 대형 내한 콘서트였고, 그들에겐 도박 같은 모험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이들이 활동을 6개월여 멈추고 콘서트 준비에만 몰두했고, 전세기 타고 따라온 일본 팬들이 콘서트장을 대부분 채웠는데도 한국어로 진행했으며, 콘서트 수익은 한국여성재단에 전액 기부하고 떠났다는 사실도 나중에 알았다. 그럼에도 한국은 시큰둥했고, 일본에선 뻘짓하더니 꼴 좋다고 비난받는 사이에 인기가 급락해 소속사가 문 닫고 밴드마저 해체했다는 사실 역시 나중에 알았다.<br/><br/>24년 전 그날, 이수현씨가 철로로 뛰어들면서 “한일 우호 증진을 위해 내 한 몸 희생하겠다”고 마음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눈앞에 사람이 있었고, 그를 위해 용기를 냈다. 차게 앤드 아스카의 내한 공연에도 이희호 여사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의 설득이 있었다지만, 음악만큼은 역사의 굴레를 뛰어넘는 길을 내고 싶다는 그들의 의지가 가장 컸을 것이다. 이런 진심들이 모여 남루했던 신오쿠보 뒷골목이 청춘의 거리로 변모하고, 일본 드라마와 K팝이 물 흐르듯 소비되는 새 시대가 열렸다.<br/><br/>“우리들이 그래도 그만두지 않는 건/꿈의 오르막을 올려다보며/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야.” 아스카가 25년 전 눈물을 삼켜가며 불렀던 ‘온 유어 마크’ 가사의 일부다.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는 꿈의 오르막이었고, 우리는 반일 죽창가나 혐한 헤이트스피치에 굴하지 않고 이만큼 올라왔다. 광복 80주년이자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엔 더욱 힘차게 올라가보자. 정치가 든든한 뒷심이 되어주길 희망한다.]]></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Sun, 28 Dec 2025 17:29:4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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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한일 우호 잇는 ‘자전거 新조선통신사’ 대장정 완주</title>
<link>http://www.soohyunlee.kr/bbs/board.php?bo_table=introduce4&amp;wr_id=231</link>
<description><![CDATA[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서울에서 도쿄까지 16일간 이어진 ‘자전거 신(新)조선통신사’가 11일 도쿄에서 해단식을 열고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br/><br/>참가자들은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에서 출발해 충주와 경주를 거쳐 부산에서 페리를 타고 일본 시모노세키항으로 건너갔다. 이후 오사카, 교토, 나고야, 시즈오카 등 조선통신사의 발자취가 남은 도시들을 잇달아 방문하며 양국 우호와 교류의 역사를 되짚었다.<br/><br/>이날 도쿄 시바공원에 도착한 자영업자 박성희씨는 “옛 조선통신사가 평화를 전했던 것처럼 이번 여정이 새로운 우정의 시작이 됐으면 좋겠다던 일본 친구의 말이 마음에 남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전체 2000㎞ 여정 가운데 자동차나 배를 제외하고 자전거로 달린 거리는 780㎞가 넘는다.<br/><br/>이번 행사는 외교부 주최로 한일의원연맹이 주도해 국회에서 예산을 확보했다. 양국에서 30명을 선발했지만 컨디션 악화 등으로 최종 목적지에는 26명이 도착했다. 명예단장은 일본 유학 중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진 고 이수현씨의 어머니 신윤찬 LSH아시아장학회 명예회장이 맡았다.]]></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Sun, 28 Dec 2025 17:21:1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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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기고]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의인 이수현 기념관’ 제의</title>
<link>http://www.soohyunlee.kr/bbs/board.php?bo_table=introduce4&amp;wr_id=229</link>
<description><![CDATA[2001년 1월 26일 일본 신오쿠보역에서 한국인 유학생 고 이수현 씨가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그 숭고한 희생은 그 당시 경색되었던 한일 관계를 넘어서 국경을 초월한 인간애와 용기의 상징이 되었고, 양국 국민에게 깊은 감동과 화해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 사건 이후 일본 내 한국인 유학생에 대한 인식이 크게 개선되었고, 한일 민간 교류가 활성화되는 긍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br/><br/>의인 이수현 씨의 어머님은 아들의 뜻을 이어받아 이수현 기념 장학회를 설립했고, 양국의 젊은이들에게 진정한 한일 우호의 가교 역할을 했다. 고 이수현 씨의 의로운 정신을 영원히 기리고, 그 숭고한 희생이 지닌 인류애적 가치를 미래세대에 교육하며, 나아가 한일 우호 증진의 거점 구실을 하는 ‘의인 이수현 기념관’을 그의 고향인 부산에 건립할 것을 제의한다. 부산은 한일 교류의 관문이자 6·25전쟁 당시 피란민에게 인류애를 보여준 역사적인 장소로서 고 이수현 씨의 의인 정신을 기념하기 좋은 도시이기도 하다. 20여 년이 지난 그의 숭고한 정신과 희생의 이미지가 차츰 잊혀 가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br/><br/>기념관 설립의 목적에는 여러 가지 다중적인 목적을 추구한다. 기억과 교육 그리고 미래를 향한 연결이다.<br/><br/>첫째, 의인 이수현 씨의 숭고한 정신을 영구보존하고 계승해야 한다.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타인을 구한 의로운 행동을 영원히 기억하고 추모하며, 그 희생이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를 지속해서 되새기는 것이다. <br/><br/>둘째,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인 인간애, 용기, 희생의 확산 거점을 마련해야 한다. 국적과 인종을 초월하여 모든 인류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를 알리고, 그 가치들이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교육과 영감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<br/><br/>셋째, 한일 우호 증진 및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 의인 이수현 씨의 희생이 양 국민 간에 준 감동을 바탕으로 상호 이해와 협력을 증진하고, 미래세대에게 과거의 갈등을 넘어선 공존과 화합의 중요성을 교육하여 건강하고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의 기반을 다져야 한다. 여기에 부산이 가진 한일 교류의 역사적 지리적 중요성을 활용한다.<br/><br/>넷째, 시민의 안전의식 및 공동체 의식을 함양해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의 시민 의식, 타인에 관한 관심, 그리고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실질적인 교육 효과를 도모하여 안전하고 상호 배려하는 공동체 문화 조성에 이바지해야 한다.<br/><br/>다섯째, 글로벌 시민 의식 함양 및 국제적 협력의 장으로 거듭나야 한다. 고 이수현 씨의 희생이 전 세계에 던진 메시지를 기억해야 한다. 국경과 문화를 넘어 인류애를 실천하는 의인 정신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매김하여, 세계인에게 영감을 제공하고 국제사회의 인류애적 협력을 촉진한다.<br/>따라서 고 이수현 의인의 희생은 단순한 비극을 넘어 국경을 초월한 인류애와 용기의 위대한 증거이다. 그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다양한 갈등과 분열 속에서 화합과 연대의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 이수현 의인의 고향인 부산에 그의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은 그의 숭고한 정신을 영원히 기리고 그가 보여준 인류애와 용기가 미래 세대에 지속해서 영감을 줄 수 있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을 만드는 것이다.<br/><br/>또 기념관의 설립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전 세계인이 함께 만들어가는 화합과 이해의 상징이며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를 일깨우는 중요한 공간이 될 것이다. 이는 부산을 한일 관계의 긍정적인 미래를 만들어가는 중심지로 나아가 인류 보편의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는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할 것이다.<br/>&nbsp;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부산광역시와 한국 정부 그리고 일본 관계 기관과 시민 여러분의 깊은 이해와 적극적인 동참을 기대한다. 의인 이수현 기념관은 의인의 삶과 정신을 깊이 이해하고 인류애의 가치를 체험하며 한일 교류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반드시 부산에 의인 고 이수현 기념관이 건립되기를 빌어본다.]]></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Sun, 28 Dec 2025 17:14:2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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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이시바 日 총리...故 이수현 부산 묘소 찾아 직접 헌화</title>
<link>http://www.soohyunlee.kr/bbs/board.php?bo_table=introduce4&amp;wr_id=228</link>
<description><![CDATA[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30일, 부산을 찾아 고(故) 이수현씨의 묘소를 찾아 헌화하며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<br/><br/>이날 이재명 대통령과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이시바 총리는 이날 오후 3시경,부산 금정구 영락공원에 있는 이씨의 묘소를 찾아 헌화한 후 이씨의 모친인 신윤찬 LSH아시아장학회 명예회장과 인사를 나눴다.<br/><br/>이 자리에서 신 회장은 이시바 총리에게 "앞으로 미래 젊은 세대에는 양국이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이웃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인사말을 건넸다. 이에 이시바 총리는 "양국이 더 가깝게 지냈으면 좋겠다"며 "장학회를 운영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답했다.<br/><br/>현직 일본 총리 대신이 이씨의 묘소를 찾아 참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자리에는 이시바 총리의 부인인 요시코 이시바 여사도 동행했다.<br/>&nbsp;지난 2010년 오카다 가쓰야 일본 외무대신이 이씨의묘소를 찾았고, 지난 2018연에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묘소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참배하기도 했지만, 전직 총리 신분이었다.<br/><br/>이수현씨는 일본 유학 중이던 2001년 1월 26일 오후 7시 15분경, 도쿄의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명을 달리했다. 한국 유학생이 일면식도 없는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졌다는 점에서 일본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일본에서 &#039;의인&#039;으로 불리며 한일양국 우호의 상징적인물이 됐다.]]></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Sun, 28 Dec 2025 17:08:2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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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故 이수현씨 모친이 재연한 조선통신사…무궁화·벚꽃 이으며 우호 다진 한·일축제한마당</title>
<link>http://www.soohyunlee.kr/bbs/board.php?bo_table=introduce4&amp;wr_id=226</link>
<description><![CDATA[제17회 한·일 축제한마당 일본 도쿄 행사가 27일 조선통신사‘친서 전달식’을 시작으로 고마자와 올림픽공원에서 개막했다.<br/><br/>올해는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아 양국이 서로를 존중하고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약속을 담아 조선통신사 친서 전달식을 재연하며 행사 시작을 알렸다.<br/><br/>통신사절단 대표인 정사(正使) 역할은 선로에 추락한 일본인을 구하려다 26세 나이로 생을 마감한‘신오쿠보역의 의인’ 고 이수현씨의 어머니이자 고인의 이름을 딴LSH아시아장학회 명예회장인 신윤찬씨가 맡았다. 일본 측막부의 수장 쇼군(將軍) 역할은LSH아시아장학회 회장이자 일·한문화교류기금 이사장인 가토리 요시노리씨가 맡았다.<br/><br/>한·일 축제한마당 실행위원회(위원장오공태·고지 아키요시)는 행사 기간인 27·28일 양일간 낮시간대에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하는 퍼레이드를 진행한다.<br/>이날 개막식에 한국 측은 이혁 주일 한국대사, 김장현 주일 한국대사관 정무공사,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주호영 국회부의장과 국민의힘 소속 김석기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국민의힘 안철수·배현진 의원,한·일 축제한마당 서울 행사 실행위원장인 손경식 CJ그룹 회장, 김영수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 김이중 재일민단 중앙본부 단장 등이 참석했다.<br/><br/>일본 측에서는나루히토 일왕의 당숙인 고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의 부인 히사코 여사, 아베 도시코 문부과학상, 미야지 다쿠마 외무부대신, 일·한의원연맹 간사장이자 이시바 시게루 총리 보좌관인 나가시마 아키히사 의원 등이 자리했다.<br/><br/>김장현 정무공사는 축사에서“조금 전 무대에서 재연이 이뤄진 조선통신사의 교류 이념은‘성실과 믿음으로 사귄다’는 의미의 성신교린(誠信交隣)이었다”며“서로를 성실히 배워나가고 신뢰하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나아가자는 과거의 다짐은 시대를 막론하고 가까운 이웃인 한국과 일본에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br/><br/>나가시마 의원은 이시바 총리의임기 내 마지막 정상외교 일정이 될 가능성이 높은 오는 30일 부산 방문을 언급하며“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 일본과 한국은 국제사회의 여러가지 과제에 함께 맞서야 할 파트너로서 협력해가야 할 중요한 이웃나라”라고 강조했다.<br/><br/>이날 개막식은 히사코 여사 등 양국 주요 내빈들이 한·일국화인 무궁화와 벚꽃을 리본으로 연결하는 세리머니와 함께 마무리됐다.<br/><br/>이번 한·일 축제한마당에서는 이창섭, 백지영, 스미다 아이코 등 양국 가수들이 출연하는 K팝 콘서트가 열린다. 중앙 무대에서 사물놀이, 북 공연, 팝페라 등이 펼쳐지는 가운데 먹거리, 전통 복장, 관광, 도서 등 다양한 한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행사도 열린다.]]></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Sun, 28 Dec 2025 16:58:03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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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고려대 세종캠, 의인 고(故) 이수현씨 24주기 추모식</title>
<link>http://www.soohyunlee.kr/bbs/board.php?bo_table=introduce4&amp;wr_id=225</link>
<description><![CDATA[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는 지난 13일 의인 고(故) 이수현씨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24주기 추모식을 진행했다.<br/><br/>글로벌비즈니스대학 학생회가 주최한 이번 추모식은 지난 2001년 1월 26일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고 고귀한 목숨을 바친 의인 고 이수현(무역학과 93)씨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용감한 행동을 기리기 위해 마련됐다.<br/><br/>이날 추모식에는 김영 고려대 세종캠퍼스 부총장, 이씨의 어머니 신윤찬씨, 정규언 글로벌비즈니스대학장, 최재혁 글로벌비즈니스대학 학생회장을 비롯해 내외빈 7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하고 헌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br/><br/>이어진 이수현 장학금 수여식에서는 글로벌경영전공 소속 학생 1명과 무단외박 동아리 소속 학생 1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br/><br/>이 장학금은 이씨의 부모가 2001년 기부한 1억 원으로 조성된 기금으로, 고인이 수학했던 무역학과(현 글로벌경영전공) 학생과 그가 활동했던 락밴드 동아리 무단외박 소속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수여되고 있다.<br/><br/>김 부총장은 "오늘은 국경과 민족을 초월한 사랑을 보여준 의인 이수현씨의 24주기 추모식"이라며 "고인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고인이 남긴 희생정신과 용기를 마음 깊이 새기는 하루가 됐으면 한다"고 조의를 표했다.<br/><br/>한편 이씨는 2001년 1월 31일 국민훈장을 받았고, 그의 모교인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에서 같은 해 2월 24일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고인을 기리는 추모기념비는 부산어린이대공원과 그의 모교인 낙민초등학교, 동래중학교, 내성고등학교, 그리고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에 세워져 있다.]]></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Sun, 28 Dec 2025 16:46:4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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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조선통신사 삼사 임명식</title>
<link>http://www.soohyunlee.kr/bbs/board.php?bo_table=introduce4&amp;wr_id=224</link>
<description><![CDATA[신오쿠보역 의인 고 이수현 씨의 어머니 신윤찬(왼쪽 첫번째) 씨가 24일 서울 경희궁에서 열린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행사에서 정사 역할로 참여하고 있다. 행사는 한국과 일본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24일부터 서울과 부산, 일본 도쿄와 오사카 등에서 열린다.]]></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Sun, 28 Dec 2025 16:45:1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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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의인’ 이수현씨 모친 신윤찬씨 “과거 집착 말라던 수현이 말처럼… 한·일, 과거 기억하되 서로 양보·상생 발전하는 관계로 나아가야”</title>
<link>http://www.soohyunlee.kr/bbs/board.php?bo_table=introduce4&amp;wr_id=223</link>
<description><![CDATA[일본 유학 중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아름다운 청년’ 고(故) 이수현씨(1974∼2001) 모친 신윤찬(75)씨는 24년 전 참척(慘慽: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의 고통을 겪었음에도 담담한 표정이었다. 매년 1월26일 아들 기일에 일본을 찾는다는 신씨는 올해도 현장을 찾아 눈물을 훔쳤다.‘의인’ 이수현 씨 모친 신윤찬씨가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통해 지난 2024년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훈장의 의미와 향후 계획을 밝히고 있다.<br/><br/>그는 최근 세계일보와 만나 “저에게 수현이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들”이라며 “지금이라도 수현이를 살릴 수 있다면 제 목숨과 바꿔서라도 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옛말에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큰일을 한 아들을 어떻게 제 조그만 가슴에 묻을 수가 있겠냐”고 뿌듯해했다.<br/><br/>신씨는 “(수현이는) 이미 한·일 양국의 우호와 교류의 상징처럼 돼버렸다”고 평가했다. 올해 광복 80주년, 한·일 수교 60년을 맞은 가운데 한·일 양국 간 민간 차원 교류협력의 상징이 된 자식에 대한 대견함이 잔뜩 묻어났다.<br/><br/>고 이수현씨는 부산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다닌 뒤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일본 유학생활 1년 즈음 통학길 지하철에서 선로에 떨어진 현지인 생명을 구하기 위해 과감하게 몸을 던졌다. 신씨는 아들이 생전에 “일본이라는 나라가 생각보다 크고, 배울 게 많은 나라”라며 “한·일 양국이 과거에 너무 집착하면 똑같이 손해를 볼 것 같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전했다.<br/><br/>그런 말을 하는 아들에게 신씨는 마음 한쪽에 불편함이 컸다고 토로했다. 수현씨 친·외할아버지 모두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돼 일본으로 끌려가 고생했던 경험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수현이 사망 이후 일본을 왕래하면서 ‘왜 아들이 일본을 좋아했는지’를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신씨는 “수현이와 제가 성격상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또 얼렁뚱땅 일하는 것보다 정확한 것을 좋아하다 보니 일본인들의 준법정신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br/><br/>개인주의가 강한 일본인들은 2001년 이수현씨 희생 이후 위험에 처한 사람들 목숨을 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가깝고도 먼 나라’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호의적으로 바뀌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반세기 전 일본에서 회자했던 ‘의인’ 이수현씨 희생을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은 드물다. 하지만 일본에선 해마다 ‘의인’ 이수현을 떠올리고 그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어머니 신씨는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간섭하지 않으려는 것이 일본인들의 특성인데, 수현이를 기억하기 위해 책을 펴내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을 보고 개인적인 일로 끝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br/><br/>연말이나 큰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성금모금운동을 벌이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모금운동 자체가 없다고 한다. 신씨는 “수현이 희생 이후 일본에서 가두모금운동이 벌어지고, 일반 시민들이 매월 일정 금액의 돈을 기부하는 게 하나의 루틴이 됐다고 한다”고 전했다.<br/><br/>신씨는 아들의 비명횡사 직후 장학회(현 LSH아시아장학회)를 만들었다. 그는 “수현이가 생전 하고 싶었던 것을 다 못하고 고생만 하다가 갔다는 생각에 다른 유학생들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수현장학회를 만들어 일본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에게 ‘이수현 정신’을 심어주고, 한·일 양국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신씨는 “처음에는 한국인 유학생에게만 장학금을 지급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동남아시아 유학생들에게까지 지원 대상을 넓혔다”며 “지금까지 이수현 장학금을 받은 유학생이 1000명을 넘었다”고 자랑했다<br/><br/>.신씨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말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욱일쌍광장)을 받았다. 그는 “2015년 남편이 일본 정부로부터 (처음) 훈장을 받았다”며 “당시 우리 부부에게 훈장을 준 것이라고 생각해 (이번에 연락이 왔을 때) 몇 차례 고사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지난해 의인 이수현씨 어머니에게 훈장을 수여하겠다고 발표했다. 신씨는 “일본 정부가 먼저 발표를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훈장을 받게 됐다”고 민망해했다. 신씨는 “이번 훈장은 LSH아시아장학회 명예회장이자 한·일 양국이 더 가까워지고 서로를 이해하는 데 다리 역할을 하는 민간 부문에 대한 격려 차원이라고 이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br/><br/>아들과 같은 또래의 젊은 부부가 아이 손을 잡고 산책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들이 너무 보고 싶다는 신씨. 그는 “주책맞게 ‘우리 수현이도 살아 애를 낳았다면 저만한 아들이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며 “아들이 아이를 낳았다면 지금쯤 손자가 대학생이 되었을 것”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br/><br/>신씨는 남은 생까지 한·일 교류협력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올해) 특별한 계획이 있지는 않다”며 “하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한·일 문화교류 행사 관련 일들을 계속 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신씨는 “올해 광복 80주년인데 과거를 잊지 말고 기억하되 양국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면 후대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과 일본이 과거의 앙금을 씻고 상생 발전하는 관계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나타냈다.]]></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Sun, 28 Dec 2025 16:43:5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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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도쿄서 의인 이수현 24주기 추도식…"양국 우호 뜻 이을 것"</title>
<link>http://www.soohyunlee.kr/bbs/board.php?bo_table=introduce4&amp;wr_id=222</link>
<description><![CDATA["아들이 한일 양국간 우호에 1인자가 되고 싶다는 말을 남겼으니 그 뜻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의인 이수현(1974∼2001)씨 모친 신윤찬씨는 고인의 24주기를 맞아 26일 도쿄 JR 신오쿠보역에서 열린 추도식에 참석한 뒤 기자들을 만나 "많은 분들이 애쓰고 계시니까 (한일 관계가) 좋아지지 않겠냐"며 이같이 말했다.<br/><br/>신씨는 코로나19 확산으로 한동안 일본을 찾지 못하다가 2023년부터는 매년 추도식에 참석하고 있다.그는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를 비롯해 이씨의 이름을 딴 LSH아시아장학회, 신주쿠한국상인연합회 관계자들과 함께 신오쿠보역에 마련된 아들의 추모 동판 앞에 헌화했다.<br/><br/>일본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이씨는 2001년 1월 26일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열차에 치여 숨졌다.<br/>신씨는 올해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은 데 대해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저는 잘 모르지만 막연한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br/><br/>추도식에 이어 신오쿠보역 인근 소규모 행사장에서는 추도문화제도 열렸다.박 대사는 김현숙 도쿄총영사가 문화제에서 대독한 추도사에서 "숭고한 희생 정신과 용기 있는 행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줬고 특히 한일 양국 국민의 마음 속에 국경을 뛰어넘는 우호와 협력의 의미와 중요성을 일깨워 줬다"고 고인을 되새겼다.그러면서 "올해는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라며 "고인의 정신을 이어받아 양국 국민이 서로 손잡고 앞으로 나아간다면 한일 관계는 더욱 발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모습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br/><br/>그동안 이 문화제를 &#039;신오쿠보 전락사고 추도문화제&#039;라는 이름으로 주최해온 신주쿠한국상인연합회는 올해부터 행사 명칭을 &#039;의인 고 이수현 추도문화제&#039;로 바꿨다.]]></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Sun, 28 Dec 2025 16:38:1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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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우리 모두 고통을 밟고 살아갑니다… 과거에 집착하면 손해죠"</title>
<link>http://www.soohyunlee.kr/bbs/board.php?bo_table=introduce4&amp;wr_id=220</link>
<description><![CDATA[‘이수현’은 일본이 24년째 기억하는 이름이다.<br/><br/>2001년 1월 26일 도쿄 신오쿠보역. 퇴근길 북적이던 플랫폼에서 취객이 선로로 떨어졌다. 곧 열차가 들어온다. 겁에 질린 인파 사이에서 두 남자가 몸을 던졌다.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27)씨와 일본인 세키네 시로씨. 열차가 너무 빨리 오는 바람에 세 사람 모두 선로에서 사망했다.<br/><br/>당시 일본으로 날아가 아들의 주검을 마주한 어머니 신윤찬(75)씨의 첫마디는 “우리 수현이 아니에요”였다. 얼굴이 많이 망가져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신씨 부부를 맞은 일본인들은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창자가 끊어지는 슬픔과 맞닥뜨린 어머니·아버지를 지켜보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br/><br/>그런데 부부는 이듬해 “일본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을 위해 써달라”며 1억원을 내놨다. 일본 사회가 다시 크게 요동쳤다. 지금도 어떤 한국인, 일본인에게는 서로가 ‘적국’이다. 그런 나라에서 아들을 잃고도 장학금을 내놓는다고? 감화한 일본인들의 기부가 이어졌다. 이렇게 이수현씨의 영문 이름 이니셜을 붙인 ‘LSH아시아장학회’가 설립됐다. 올해로 23년째. 한국과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일본 유학 중인 학생들을 선발해 매년 10월 장학금을 준다.<br/><br/>이 장학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는 신윤찬씨는 작년 말 일본 정부에서 훈장(욱일쌍광장)을 받았다. 일본과 맺은 우호 증진에 기여한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작고한 남편 이성대씨도 생전(2015년)에 같은 훈장을 받았다. 부부가 같은 공적으로 따로 훈장을 받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br/><br/>올해는 한·일 수교 60주년이다. 경색됐던 한일 관계는 이 정부 들어 양국 정상의 ‘셔틀 외교’ 복원 등으로 개선됐지만, 우호·협력 관계가 정착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일 우호의 영원한 상징이 된 이수현씨의 뜻을 되새겨볼 때다. 지난 6일 부산 중동 자택에서 만난 신씨는 “우리 모두는 고통의 토대 위에서 살아간다”며 “과거의 잘못은 그대로 직시해야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데 과거가 걸림돌이 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br/><br/>◇강제징용 당사자지만...<br/><br/>취업을 앞두고 일본 문화를 배우고 싶다며 1년 일정으로 떠났던 이수현씨는 돌아와 말했다. “일본은 아이들이고 어른이고 배울 게 정말 많은 나라예요.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많아요. 일본에 조금만 더 있다가 올게요.”<br/><br/>그렇게 말하는 아들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고 신씨는 술회했다. 일본으로 다시 떠나기 전날 밤 모자는 캔맥주를 나눠 마셨다고 한다. “한일 양국이 과거에 집착하면 양국에 똑같이 손해가 될 것 같아요. 그걸 바꾸는 일을 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나눈 말이다. 그것이 아들의 유언이 될 줄은 몰랐다.<br/><br/>“수현이는 평생 떼를 쓴 적이 없어요. 항상 야무지게 자기 계획을 세우는 아이라 ‘뭘 하겠다’고 할 때 반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애가 1년간 일본에서 뭘 보고 느꼈을지 자꾸 생각하게 됐지요.”<br/><br/>-원래 일본을 좋아했나요?<br/>“전혀요. 저희 아버지는 일본군에 붙잡혀 고문당한 뒤 극적으로 도망쳐서 평생 후유증에 시달렸어요. 시아버지는 강제징용 피해 당사자십니다. 아들 사고 전에는 그 나라에 가 본 적도 없고, 막연하지만 일본에 적의를 갖고 있던 보통 한국인이었습니다.”<br/><br/>-아들까지 잃었으니 적의가 더 커졌을 것 같은데요.<br/>“한동안 내가 이 세상에 있는지 저 세상에 있는지 혼란스러웠어요. 그런데 왜 수현이가 다시 일본에 가려고 했는지, 왜 그런 위험한 상황으로 몸을 던졌는지 자꾸 생각하게 됐습니다. ‘한일 양국을 잇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한 아들의 뜻을 이어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사고 직후부터 많은 일본인이 저에게 대신 사과하며 깊은 위로를 표했습니다.”<br/><br/>일본에서 항공편으로 가장 먼저 배달된 것은 손을 모으고 있는 사람 형상의 목각 공예품이었다. 미안하다는 뜻의 ‘すまん(스만)’이 새겨져 있다. 한 일본인이 마음을 담아 보낸 것이다. “많은 일본 사람이 눈물을 흘리면서 ‘뭐 하러’ 한국인이 일본인을 구했느냐고 했어요. 왜 아까운 청년이, 그것도 구원(舊怨)이 있는 일본 사람을 구하느라 목숨을 바쳤느냐고요. 나이 든 일본인들은 입밖에 내진 않더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한국에 미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br/><br/>-그래도 3대가 일본에 피해를 봤는데요.<br/>“사고 직후 일본 법률 사무소에서 ‘(열차) 운전 부주의’라면서 소송을 하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그런 거 안 한다’고 한마디로 거절했어요. 수현이의 깊은 뜻을 저버리는 거라고 생각했지요.”<br/><br/>-아버지와 시아버지는 생전에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br/>“아버지는 평생 지병을 달고 사셨어요. 할머니가 백방으로 약을 구하러 다니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아버지는 강제징용당했다가 해방 이후로도 일본에서 한참 일하다 돌아오셨고요. 남편은 오사카에서 태어났습니다. 수현이 사고 이후 당시 한국인 거주지였다는 곳을 가봤는데 강가에서 닭도 잡고 하는, 아주 열악한 마을이더라고요.”<br/>-강제징용 배상 소송을 내진 않으셨나요?<br/>“아니요. 나는 그런 거 안 하고 싶어요. 시대 흐름에 따라 억울한 것도 있고 잘못한 것도 분명히 있지만, 시끄럽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어른들도 일본에 악다구니하거나 원망을 하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일본이 우리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이야 계속 사과하고 반성해야 할 일이고, 각자 시대의 아픔이 있는 것 아닐까요?”<br/><br/>-‘3자 변제’ 방식 강제징용 해법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br/>“내용은 잘 모르지만 이번에 내놓은 해법으로 잘 마무리됐으면 해요. 모든 게 동전의 양면처럼 좋고 나쁜 게 있잖아요. 적당·적합이 어려운 거지만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게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남편도 생전에 ‘우리 세대에서 모두 끝났으면 좋겠다’고 기대했어요.”<br/><br/>아들의 사고 이후로 어머니는 해마다 최소 두 번 일본을 찾았다. 뒤늦게 일본어를 배워가며 많은 일본인과 교류했다. 신씨는 “어느 날 한 일본인이 독도 문제를 두고 ‘일본에 섬이 얼마나 많은데 구태여 거기까지 가서 그러느냐’고 하더라”며 “일본 사람은 대체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고, 이 보통 사람들의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했다.<br/><br/>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 뒤 신씨는 조심스럽게 ‘시대의 판단’이라는 화두를 꺼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계속 배상 이야기를 하는 게 자존심 상하는 것 같아요. 한국도 이만큼 살아냈으니 우리 식으로 해결하면 되지 않을까요? 60년 전(한일 청구권 협정)에는 대한민국 발전의 기로에서 국가적 필요에 따라 돈을 얼마 받은 거잖아요. 그 시대의 판단을 지금 우리 잣대로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없을 때는 새다리도 크지만 배부를 때는 소다리도 작아 보이죠. 그때는 그때대로 훌륭했던 게 있어요.”<br/><br/>◇‘다리’가 된 아들<br/><br/>가케하시(架け橋). ‘다리’라는 뜻이다. 일본에서 제작한 이수현씨 사고를 다룬 다큐멘터리 제목이다. LSH아시아장학회에서 내는 소식지 이름이기도 하다. 한일 양국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어 한 수현씨 뜻을 담았다. 다큐 ‘가케하시’는 사고 이후의 일들을 업데이트해 올해 ‘3장’ 제작에 들어간다. 24년째, 사고를 기억하고 기리는 것이다.<br/><br/>작년 5월에 나온 장학회 소식지(38호)에는 “이수현씨처럼 아시아의 가교가 되고 싶어 지원했다” “그의 긍정적인 생각과 희생정신을 본받아 한일 간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 등의 장학생 에세이가 실렸다.<br/><br/>-20년 넘게 교류가 이어지네요.<br/>“저도 이렇게 길게 계속될 줄은 몰랐습니다. 보통 일본은 기부금을 모아서 일회성으로 그해에 소진한다고 해요. 그런데 LSH장학회는 나고 드는 기부자는 있지만 계속 비슷한 수준에서 기부금이 모이고 활동이 이어지고 있어요. 장학생도 1200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br/><br/>-장학생들을 만나시나요.<br/>“매년 10월 장학금 수여식 때요. 불교에서는 늘 ‘비워라’ 하지만 어떻게 비우나요. 그런데 막상 내 아들이 없어지니 모두 다 내 아이 같아요. 장학생들이 어리숙한 말투로 제게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는데, 다 내 아이처럼 귀엽고 저도 감사하고요.”<br/><br/>-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br/>“사고 직후에 유학생이나 재일 교포가 편지를 많이 보냈어요. 한국과 한국 사람을 대하는 일본인들 태도가 급격하게 달라졌다는 거예요. ‘학교에서 외톨이였는데 일본 학생들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면서 감사 인사도 하고요.”<br/><br/>사고 이듬해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렸고, 드라마 ‘겨울 연가’가 히트했다. 일본에서 인기가 어마어마했던 ‘욘사마(배우 배용준)’ 팬클럽도 LSH장학회에 힘을 보탰다. 신씨는 요즘도 일본에 갈 때 욘사마 팬클럽 멤버들과 종종 식사를 한다고 했다. “그때는 정말 ‘한일 관계에 뭐가 잘 되겠구나’ 하는 기대를 많이 했어요. 일본에서 손편지가 쏟아지는데 집배원 아저씨한테 미안할 정도였어요. 이렇게 우리 수현이가 (희생해) 한일 관계를 이어주는 끈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아무리 말로 ‘잘 지냅시다’ 한들 그게 잘 안 되잖아요. 수현이가 한일 양국에 남긴 유산이 그만큼 가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br/><br/>-일본이 더 기억하고 기리는 일에 열심이라고 생각하시나요.<br/>“한국에서도 2008년에 ‘너를 잊지 않을 거야’라는 제목의 영화가 제작됐고, 기부한 사람도 많아요. 다만 수현이의 죽음에는 일본인들이 더 마음의 빚이 있겠지요.”<br/><br/>-교과서에도 실렸죠.<br/>“한일 양국 모두요. 국정 교과서는 아니지만 수현이 이야기(러시아워의 비극)가 실린 교과서를 채택한 일본 학교에 제가 수업 참관도 갔어요. 발표 수업을 하는데 아이들이 ‘저는 못 했을 것 같아요’ ‘소리만 질렀을 거예요’ 이런 얘기들을 하더라고요. 뭐랄까. 비어 있던 속이 꽉 차 오른다고 해야 할까요? 일본은 옛날 것을 반추하면서 차곡차곡 다져가며 성장해 나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br/><br/>-다큐에는 어떤 내용이 담기나요.<br/>“그동안 장학생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무엇이 바뀌었는지가 담기겠죠. 처음 신오쿠보역에 갔을 때 놀랐어요. 당연히 스크린 도어는 없고, 선로는 푹 꺼져 있는 데다 플랫폼 사이의 공간도 없고, 도심이라 사람은 바글바글하고요. 역장을 만나 ‘도쿄를 세계적 대도시로 알고 있는데 너무 허술해서 놀랐다’고 말했어요. 차차 스크린 도어도 설치됐는데, 그런 변화를 정리해 보내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br/><br/>◇몸 움직여 슬픔 잊어냈다<br/><br/>지금은 담담히 회고하지만 그 역시 고행의 길을 길게 지나왔다. 수현씨는 한일 양국에 지극한 감동을 줬다. 사고 직후 한일 양국 정부에서 그에게 훈장을 수여했고, 부산 초읍동 어린이대공원 입구에 추모비가 세워졌다. 모든 사람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아들 잃은 부부를 바라봤다. “그러면 뭐해요. 내 자식은 없는데. 멍했어요. 살아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고. 그저 매일 아들 보는 마음으로 추모비에 오갔습니다. 망가진 꽃다발도 치우고 추모비를 쓸고 닦고.”<br/><br/>그러던 어느 날 공원 입구에 한 줄로 길게 늘어선 할머니들과 마주쳤다. 점심 급식을 받으러 온 노인들이었다. 그날부터 밥을 짓기 시작했다. “시장에 가서 나물을 10kg씩 사고, 어르신들 좋아하는 특식으로 카레와 짜장밥을 주로 했습니다. 이웃과 친구가 많이 도와줬는데, 힘에 부칠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또 누구네 중학생 딸이 마침 시간이 된다고 와서 돕고, 희한하게 계속할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br/>까무룩 쓰러진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이 급식 봉사를 하면서 두 달 만에 오히려 힘을 얻었다. 몸을 움직이며 슬픔을 잊어냈다. 처음엔 매주 두 차례 밥을 해 날랐고, 신씨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기업 등의 후원이 늘었다. “한 17년쯤 했나 봐요. 주변에서 ‘이제 그만 저희도 할 수 있게 자리를 물려 주세요’ 해서 내려놨습니다. 2017년에 남편에게 뇌경색이 왔어요. 일주일에 하루라도 혼자 밥 먹게 하는 게 마음에도 걸렸고요.”<br/><br/>신씨는 요즘도 열흘에 한 번쯤, 한 달에 두 번쯤 시간이 되는 대로 추모비를 찾는다. 24년이 지난 일이지만 요즘도 꽃 한 송이, 부산에 여행 온 일본인의 손편지 등이 더러 남아 있다고. “수현이와 우리가 참 받은 게 많아요. 신세지는 거 싫어합니다. 뭐라도 돌려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많아요.”<br/><br/>-뭘 받으셨나요.<br/>“수현이를 한국에 데려왔는데 묘지가 안 정해져서 정수사라는 절에 100일 가까이 있었어요. 그때 전국에서 목사님, 신부님까지 많은 사람이 찾아와 우리 수현이를 위해 기도해 줬어요. 만나는 일본인마다 또 빌어주고요. 전쟁 때 학도병으로 나간 아이들 엄마는 유골도 못 찾고 어떻게 살았을까요? 내가 괴로워하면 그런 엄마들한테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br/><br/>아들 이야기는 담담하게 하던 신씨가 갑자기 눈물을 보였다. 무안공항 비행기 사고 이야기가 나왔다. “수현이도 처음에 얼굴을 몰라볼 정도로 많이 상해 있었거든요. 그때 어떤 분이 저에게 ‘센노카제(千の風·천의 바람)’라는 시를 보내주셔서 많이 위로가 됐는데, 유족들에게 이걸 들려주고 싶어요. <br/>‘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세요/ 나는 그곳에 없습니다/ 저는 빛이 되어서, 새가 되어서/ 당신 창가에 있어요.’”<br/><br/>오는 26일에도 도쿄에 간다. 매년 기일마다 신오쿠보역에서 추모 행사를 하고, 한국에서는 딸 내외와 일본 영사관 인사들이 참석하는 추모식을 갖는다.<br/>“이제 수현이는 나의 아들, 개인 이수현이 아니고 한국과 일본 우호의 상징이 됐습니다. 한일 양국에서 똑같이 훈장을 받은 게 수현이가 처음이래요. 우리나라의 영웅은 일본에서는 아니었잖아요. 이런 비극은 없어야겠지만 수현이 같은 ‘다리’가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<br/><br/>집 안 곳곳에서 그런 흔적이 묻어났다. 일본인에게 받은 편지 수천 통, 관련 기사와 책, 소식지 등을 정리해둔 것만 서재 한쪽 벽면을 가득 채웠다. 거실 장식장 위, 한 일본인이 만들어준 장식품에 적힌 한마디가 눈에 들어왔다.<br/>‘あなたを忘れない(너를 잊지 않을게).’]]></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Sun, 28 Dec 2025 16:32:5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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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한·일 우호에 기여” 이수현 모친, 일본서 훈장</title>
<link>http://www.soohyunlee.kr/bbs/board.php?bo_table=introduce4&amp;wr_id=219</link>
<description><![CDATA[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2001년 사망한 의인 이수현 씨의 어머니, 신윤찬(74) LSH아시아장학회 명예회장이 지난 20일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br/><br/>신 명예회장은 23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저뿐 아니라 장학회와 한·일 문화 교류를 위해 활동하는 모두를 위한 훈장”이라고 말했다. 고인의 영문 이름 앞글자를 딴 이 장학회는 일본 각계각층이 기부한 자금으로 설립됐으며, 일본에서 유학하는 아시아 학생 1000명 이상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br/><br/>신 명예회장이 받은 훈장은 욱일쌍광장으로, 일본과의 관계 증진에 기여한 외국인에게 주어진다. 주한일본대사관은 앞서 “신 명예회장은 양국 우호 친선 및 상호 이해 촉진에 기여했다”고 수여 배경을 밝혔다. <br/>신 명예회장은 “아들이 없다 보니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모두 자식 같다”며 “아들을 기억하고 장학회 활동에 함께 해준 분들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Sun, 28 Dec 2025 16:21:2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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