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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친 남한 청년은 동해의 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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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나그네
날짜 : 04-12-14 00:00
조회 : 2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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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타이완의 유력 일간지 리엔허빠오(聯合報)의 2001년 1월31일자 11쪽 國際版에 실린 기사(양재오 번역)이다.
번역한 뒤, 당시 굿뉴스 게시판에 올렸었다. 이제 일주일 뒤(1월26일)면 이수현 씨가 숨진지 만 3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날을 맞으며, 당시 타이완 한 일간지에 실린 의로운 한국 청년 故이수현 군 관련기사를 당시 올렸던 그대로 다시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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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이수현 관련 기사는 오늘(1월31일) 이 곳 타이완의 유력 일간지 리엔허빠오에 실린 것입니다. 아마 고국에 계신 분들은 이미 각종 매체를 통해서 이 기사에 대하여 잘 알고 계시리라고 봅니다만, 그의 의로운 행위를 이 곳 타이완에 전하는 기사를 대하면서 가슴이 시려오고 숙연함을 느꼈습니다. 제 삼자(타이완)는 이수현의 의로운 행위를 어떻게 전하는지 나누고 싶어서 굳이 여기에 올립니다. 아울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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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친 남한 청년은 동해의 영웅 (東瀛英雄)이 되었다
동경 지하철 역에서 사람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남한 청년 이수현(李秀賢))은 이미 일본사람들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알려진 영웅이 되었으며, 더욱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한일 두 나라의 정감(情感)이 오고가는 다리(橋梁)가 되었다.
26 살의 이수현은 남한의 고려대학교 무역학과 4학년 학생으로서 휴학기간을 이용하여 일본에 가서 일어를 배우는 중이었다. 지난 금요일 저녁 7시15분 경 그는 동경 신숙구(신주꾸, 新宿區) 신대구보(新大久保) 지하철 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던 중, 술에 취한 일본인 판본성황(坂本成晃)이 지하철 궤도 위에 떨어진 것을 발견하였다. 이수현은 다른 일본인 촬영기사 관근사랑(關根史郞)과 함께 그를 구하려고 곧바로 플랫폼에서 뛰어내렸으나, 플랫폼을 향하여 달려오는 전철에 부딪혀서 불행하게도 3명 모두 숨지고 말았다. 이 3명은 서로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을 구하려고 자기 목숨을 바친 이와 같은 의거(義擧)는 수많은 일본 사람들과 한국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냈다. 수상을 비롯한 정부 관원부터 작은 상점 주인에 이르기까지 연일 전 일본이 모두 이 사건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일본 수상 삼희랑(모리 요시로, 森喜郞), 외상(외무부 장관) 하야양평(고노 요헤이, 河野洋平)등 정부관원과 여야 정치인 및 천 여명의 일본 민중이 앞다투어 이수현의 영전(靈堂)에 나아와 분향을 하고 애도를 표시하였다. 남한 대통령 김대중도 공식적으로 이수현의 의거를 포양( 揚)하였다.
일본 사람은 본래부터 배타적인데다가, 남한과의 관계에 있어서 과거 침략식민지의 역사로 인하여 남한 사람들에게는 증오의 감정이 남아있다. 지금 한국 청년 한 사람이 뜻밖에도 분연히 일어나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낯선 일본 사람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사건은
일본 사람들의 마음에 감격과 자성(自省)으로 복잡하게 뒤엉킨 정서를 유발시켰다. 또한 이수현의 할아버지(祖父)는 이전에 일본인에 강제되어 일본 탄광에서 노역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일본인들은 말하기를 삼가며, 어떻게 한 한국 사람이 일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희생할 수 있는지 몹시 의아해 한다. 일본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반도를 그들의 식민지로 삼아 강도 높은 식민통치를 하였다. 비록 이 것이 반세기 이전의 지나간 일일지라도 두 나라 관계에 여전히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일본인은 냉혹하고 꿍꿍이 속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일본인은 한국인이 낙후되었고 (이것저것) 따지고 승강이를 벌인다고 여긴다.
이수현의 의거는 수많은 일본인들의 이와 같은 판에 박힌 듯한 인상을 바꾸게 하였다. 나이든 많은 일본인들은 이수현을 보면서 신 시대의 일본 젊은이에게 자아희생의 정신이 결핍되었음을 느낀다.
이수현의 분향소는 그가 공부하던 동경의 언어학교에 마련되었다. 삼희랑(모리 요시로,森喜郞) 수상을 수행하여 분향소에 와서 애도를 표시한 문부성(문교부) 장관 정촌신효(町村信孝)는 이렇게 말했다 : \"그는 우리에게, 특히 일본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메씨지를 남겨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이전에 우리에게 있었던 것이나 지금은 별로 남아있지 않은 것임을 상기시켜 주었다.\"
천 여명의 일본인들은 혹한의 날씨도 개의치 않고 분향소 밖에서 줄을 서서 한 시간이나 기다린 뒤, 일전에 일면식도 없었던 이수현의 영전에 분향을 하였다. 어제(29일) 아사히 신문(朝日新聞) 석간의 머리말 기사는 \"일본과 한국이 함께 눈물을 흘렸다\"였다. 이수현 개인의 홈페이지에 그가 일찍이 써놓은 글귀는 다음과 같다 : \"내가 일본에 온 것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 하나의 다리를 놓기 위해서이다.\" 지금 그는 그 일을 해냈다. (리엔허빠오 종합 30일 외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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