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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년전 오늘을 생각하며...
  글쓴이 : 홍일기     날짜 : 07-10-15 00:00     조회 : 2056    
오늘은 하루종일 심장이 두근두군하고 쓸쓸하여 아무 일도 잡히지 않는다. 나는 6년전 수현님이 다니던 일본어학교의 당시 학생회장이자 수현이랑은 형제처럼 지내던 사람이다. 일본에 와서 만난 동생이지만 산악자전거라는 취미로 가까와졌고 동경에서 후지산정상까지 자전거 등반을 하는중 해발 2500M지점에서 부둥켜안고 노숙을 했다.
그때는 사람의 몸이란 정말 따뜻하구나 세삼 느꼈다. 8월 무더운 여름 하루 100키로 이상의 자전거 등반은 더위와의 싸움일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리고, 다음해 1월 26일 8시경으로 기억한다. 오후 6시가 외면 어김없이 스포츠 클럽에서 만나던 수현이가 오지 않았다. 운동을 마치고 일본어학교 자습실에서 수현을 궁금해하는 데 한국유학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전철사고나 났다고 하는데 수현이인 것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일본인친구 차를 얻어타고 신오쿠보 병원에 갔을 때 내가 본 건 수현님의 싸들하게 식어버린 몸이었다. 아니, 그때는 늘 입던 옷만 보고 이내 머리를 돌려야 했다. 학교관계자가 왔고 수현님의 집에 연락이 취해졌다. 다음날 수현님의 부모님을 마중하러 갔다. 공항 출구에서 나오시는 중년의 부부, 그리고 여성분은 직감적으로 수현이의 어머니라고 생각되었다. 사실이 아니기만을 이내 생각하며 부산에서 출발하신 바로 그 모습이다. 난 나도 모르게 수현님의 어머님을 얼싸안고 눈물을 흘려해 했다. 유학생이라면 이런일이 아니더라고 공항출구를 나오는 부모님을 보면 누구나 가슴이 뭉클했을 것이다. 나는 수현이 어머니의 사실이냐는 질문에 사실이이고 짧게 이야기하고 수현이의 거룩한 희생을 애써 어머니께 전달하여 위로하려 했다. 하지만 어떠한 말이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겠는가. 공항에서 병원으로 가는 전철은 도중에 몇번이고 정차를 해야 했다. 동경에서는 드물게 눈이와서 전철 선로가 묻혀서
예정보다 1시간 이상 늦에 도착했다. 그리고, 신주쿠역에 도착하고 나는 일본어학교로 향했다. 차마, 부모님을 모시고 수현이가 안치된 곳을 갈 용기가 없었다. 무서웠다. 그리고, 형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각오하고 이내 냉정하려고 애썼다. 일본어학교 설립이래 학교장은 처음이었던 것으로 안다. 학생회장이라는 입장때문에 제대로 울지도 못했다. 그날밤 수현이의 관앞에서 부모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현이와 즐거웠던 일, 부모님께는 아직 인사시키지 않은 일본에서 사귄여자친구이야기, 모든 것이 나와 연관이 있었고, 마치 죽은 수현이앞에서 여자친구를 인사시킬 때는 형으로서 죄를 지은 느낌이었다.그리고, 수현님의 죽음은 장래식이 끝난 후에도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만 갔다.사실, 난 그때 3개월간 하루 3시간이상 잠을 자지 못했다. 상황이 진정되어 갈때 나는 난생처음으로 입원을 했다. 글해 9월 우여곡절끝에 대학원진학이 확정되었다.
수현이를 보낸지 6년이 지난 지금 난 교통공학을 공부하는 박사과정 수료를 앞두고 있다. 4월 부터는 회사생활을 하게 되어있다.
내가 교통안전에 관한 논문을 쓰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길을 걷고자 한다. 수현이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만날 수 없겠지만. 성불하여 나를 보아주고 지켜주리라 믿는다. 그리고, 열심히 갈 길를 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