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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잊지 않을거야 시사회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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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정태호
날짜 : 07-10-15 00:00
조회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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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월 26일 오후 7시 15분.
지금으로 부터 6년전 바로 오늘, 한국인 청년 이수현 씨는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 선로에 뛰어들었다가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하고 꽃다운 26의 삶을 차가운 선로 바닥에서 마감하게 되었다.
그로 부터 6년, 2007년 1월 26일 그의 삶을 주제로 한 영화 \"너를 잊지않을꺼야\" 의 일본 전국 개봉을 앞둔 하루전 그의 6주기 기일에 맞춰 특별 시사회가
개최되었다.
시사회에는 아키히토 일본 천황 부부를 비롯해 아베 신조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 부부,
이지마 히데타네 일한경제협회장, 라종일 주일 한국대사, 재일동포 야구선수 장훈씨,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부인, 역도산 선수의 부인 등
일본의 각계각층의 인사들은 물론 일본사회의 영향력 있는 한국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고 이수현씨의 의로운 희생이 일본인 주류 사회에
얼마만한 인상을 남겨주었는지 참석한 인사들의 내력을 보고는 현장에서 바로 실감할 수 있었다.
2006년 1월 고 이수현 씨가 생전에 다니던 \'아까몽까이 일본어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영화는 그 해 6월경 부터 일본 로케가 시작되었다. 고 이수현씨가
생활하던 곳을 중심으로 촬영이 진행되었고 일본어 학교 분을 촬영할 때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원봉사자를 뽑아 엑스트라로 출연시켰었다. 나는 그의 의로운 희생에
대한 존경심으로 기꺼이 토요일 하루를 반납하고 학교에 나갔다. 그날, 푹푹찌는 여름이던 그때 겨울옷을 입고 뜨거운 조명 밑에서 고 이수현씨의 동료학생 역할
엑스트라로 참여하기도 하고 촬영이 없을 땐 촬영진행의 일사분란한 모습을 쭉 지켜보았다.
한 가지 재미 있었던 점은 얼핏 보아도 통제가 심한 한국 영화 촬영장 과는 달리 말썽만 피우지 않으면 겨우 엑스트라인 내가 촬영장 현장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거나 \"액션\"을
외치는 감독 뒤에서 모니터를 통해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구경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재미있었던 점은 이 영화 제작의 메가폰을 잡은 허나우도 준지 감독의 자유분방한(?) 촬영방식이었다.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나는 전공수업의 하나로 그 지루한 \'프랑스 영화\'를 분석적으로 접한적이 있었다. 그 때 감탄했던 사실은 촬영전 부터 감독의 머릿속에 치밀하게 그려져
가득차 있는 화면구도에 관한 것이었다. 사물 하나 하나의 배치에 세심한 의미를 두고 감독의 의도, 주제를 화면 곳곳에 교묘히 숨겨둔 듯 배치해 둔다는 \'미장센\'.
그런데, 촬영하던 그 날 허나우도 준지 감독에게는 전혀 그런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감독의 머릿속의 시놉시스대로 구도를 잡아가며 촬영을 카리스마 있게 진행하는 모습이 아니라
주연,조연배우,한국스텝,일본스텝할 것 없이 촬영중 제기되는 이런저런 이의에 대해서 그것을 대부분 수용하여 배우의 연출을 그때그때 바꿔서 지도하는 감독의 모습을 보고 저래서야
일관된 주제로 감독의 색깔을 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앞선 염려가 들었었다. 그날 이후 후지산 부근의 대학에서 촬영된 주인공의 대학생활 촬영분을 접했을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촬영 시 주인공 이수현 역의 이태성씨 옆에 앉아있던 덕에 촬영 사이사이 이런저런 얘기를 해봤었다. 이런저런 나의 질문에 생각보다 겸손하고 친근한 응대를 해주어 괜히 우쭐했던 나는
영화 잘 촬영하시라고 인사까지 하고 정말 관심깊에 간간히 들려오는 영화 촬영소식에 귀를 귀울였다.
그로 부터 약 7개월 후인 2007년 1월 26일인 바로 오늘 일본 전국 개봉 하루를 앞두고 일본천왕과 일본 내 유력인사를 초청하여 특별시사회 형식으로 영화상영과 6주기 추모회가 진행되었고,
아까몽까이일본어 학교 장학생으로 뽑힌 덕에 시사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먼저, 영화를 보고난 후 개인적인 느낌이라면, 염려했던 부분이 그대로 영화속에 드러났다는 점이었고 엉성한 시나리오 탓인지 부실한 편집 탓인지 스토리 진행이 군데 군데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러운점과
마지막 하일라이트 부분이 비중이하로 짧고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에 그만큼 기대도 커, 헐리웃 영화의 기술,물량공세의 특수영상효과나 가슴을 울리는 대종상 주연급 배우의 연기에
익숙해진 나는 큰 실망을 하고 말았다. 일본인이 제작을 맡아 우리들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상영 후 일본인 선생님에게 영화의 소감을 물어 보았다.
원래 일본인들이 그런 표현을 솔직히 드러내진 않지만 선생님 역시 \"마지막 장면이 뭔가 부족하지 않았나 합니다. 영화가 이제 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 했는데 끝나버렸네요.\" 이런 소감을 들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관객은 스토리상 주인공의 사고를 최고점의 하일라이트로 하고 그 이후에 주인공의 죽음으로 인한 일본사회의 감흥과 반성을 감동적으로 보여주리라고 예상했을 터인데 이런 예상은 허탈하게 빗나가고
주인공의 사고와 함께 영화는 주인공 주변인물들의 화해를 잠깐 보여주고 막을 내려버린다. 마치 감독은 이후의 화해는 우리들의 몫이라는 걸 알려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영화의 초반, 감독은 한국과 일본간의 실제 감정의 골을 이수현의 눈을 통해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일본이라면 그냥 미워하고, 싫어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리고 일본에서는 한국인이라면 먼저 무시하고
쳐다보는 그런 깊은감정의 골을 한국의 작은 청년 이수현, 그 혼자서 짊어지고 스스로 극복해 나가려 답을 찾으려 노력한다.
나를 비롯해 함께 참석한 유학생들은 영화를 통해서 두 나라간의 골을 극복하려는 이수현씨의 삶 뿐만 아니라 고단하고 차별당하는 한국유학생 그리고 더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재일 한국인의 삶의 모습을 일본인이 공감할 수 있도록
보여주어 이수현씨와 같은 삶을 사는 유학생들을 그리고 차별받는 한국인들을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시선에서 편견을 거두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었다.
영화속에서 이수현 혼자의 힘으로 편견을 거둬내는 것이 무리였고, 영화 한 편에 그런 무리한 기대를 하는 우리의 희망도 욕심이었겠지만 분명 이 영화는 주인공의 의로운 정신으로 인해 양국의 이해가
깊어지기를 바라는 메세지를 전해주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속에서 한일 두 민족, 일본인 부모 자식, 부부등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갈등과 반열을 이수현의 눈으로 보여주다 감독은 갈등의 최고조에 사고가 있었던 신오쿠보역으로 관객을 인도했다.
그리고 마치 뛰어드는 주인공을 갈등을 봉합할 치료자나 번제물로 그려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는 한국인 청년 이수현씨의 모습을 그린 것이었지만, 감독은 이수현의 개인적인 삶 이외에도 이수현이 바라본 일본을 그려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 청년이 주인공이었던 영화 치고는 이야기의 비중의
일본의 현실을 반성하고 보여주는 것으로 그려져 다소 그의 실제 모습을 궁금해 했던 일본인 관객들에게 아쉽게 되었지만 외국인의 눈으로 본 자신들의 모습을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결과를 나타냈다고 생각한다.
그 만큼 자국민을 위한 영화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으며 일본에서의 성적표는 내일 부터 받아 볼 수 있겠지만, 한국에서 개봉한다면 일본보다는 적은 반응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사회는 사고 이후에 일본에서 실제 어떤 반성과 반향이 일어났었는지 그날의 일들을 익히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감동은 영화가 아니더라도 일본인들은 충분히 기억하고 있느리라 감독은 생각했던것 아닐까,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연출하여 잘해야 본전이라는 부담을 안는 대신에 감독은 그 사고가 있기전에 주인공 이수현이 어떻게 살아 왔기에 그 자리에서 뛰어 내릴 수 있었는지를 관객에게 보여주려 했던 노력이 보였다.
의인 이수현씨의 삶을 사실적으로 들여다 보았다기엔 다소 부족한 점이 없진 않았지만 그의 殺.身.成.人.의 정신, 갈등과 고통을 극복하여 화해로 나아가려는 그의 부단한 노력을, 그 것을 높이 평가하여 중점적으로 연출한
감독에게 감사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재일 한국인은 물론, 어린시절 동내야구에 푹 빠졌던 시절 대단한 영웅이었던, 야구인 장훈 씨와의 만남과 그에게 받은 싸인은 특별 시사회장에서 얻은 또 다른 특별한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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