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추모게시판 > 격려편지
 
  님의 침묵
  글쓴이 : 관리자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 걸음 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배기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을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만해 한용운

당신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 것은 사고가 난 다음날이었습니다.
당신의 얼굴을 처음 본 것은 장례식 때 무거운 표정으로 당신의 사진을 들고 계시던,
당신의 아버지의 손에 있던 사진을 통해서랍니다.

저는 당신을 알지 못합니다.
당신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뉴스를 통해서 들은 이야기 뿐이 없습니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 당신보다 1시간 30분 먼저 그 곳을 떠났습니다.
당신이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구할려고 뛰어든 바로 그 곳입니다.
제가 열차를 탔던 곳이 당신이 뛰어든 바로 그 자리일지로 모르겠습니다.

저는 당신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아는 것은 있습니다.
저보다 용기 있으신 분이라는 것...
제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었다면 과연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우연히 그 역을 가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몸을 던진 그 자리에 가봤습니다.
지나가는 열차에 몸을 피하는 저를 느꼈습니다.
다시 한 번 당신의 용기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당신이 구하실려고 하신 분은 사람이었습니다.
일본사람도 한국사람도 중국사람도 아닌 그냥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당신은 당신의 몸을 던지셨겠지요.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이니까요.
다들 잊고 살아가는 일을, 당신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당신을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을 잊지는 않을 겁니다.
당신의 용기와 당신이 잊지 않았던 그 사실을 늘 생각하며 살아갈려고 합니다.
당신의 육신은 사라지겠지만 당신의 그 정신은 늘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자리잡히길 빌며,
당신 가시는 그 곳까지 평안하게 가시길 바랍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